나눔사례

<2015. 8월호 '외침' 기사> 이웃을 위해 재능 나누는 일상 탈출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5-08-18 조회수 : 1751

가끔 행복이 멀리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흥겨운 음악을 듣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웃다보면 알게 된다.

행복이 늘 곁에 있다는 사실.

송정순 마르타씨는 포크댄스와 레크리에이션 봉사로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그럼 미용실로 오세요." 흔쾌히 인터뷰를 허락하는 그녀의 한 마디. 약속한 날, 수원 매교역을 나와 골목으로 들어서자 그녀가 일하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싸인볼이 두 대나 돌아가며 환영해준다. 송정순 마르타(68, 매교동본당)씨는 손님의 머리를 매만지는 중이었다. 뒷머리를 능숙하게 빗질을 하며 마무리 했다. "돈 없어도 그냥 오시면 돼." 그녀는 문 밖까지 따라 나가며 손님과 인사를 했다. 오래된 단골인 듯 했다.

 

 

"미용실을 운영한지는 30년이 되어 가네요. 제가 워낙 하는 일이 많다보니 손님들이 저를 '장관 만나기보다 어렵다'고들 해요, 하하. 그래도 가족처럼 대하니 다른 데 안 가시고 또 찾아오세요." 머리를 하러 들렀다가 그녀가 없어 허탕 치는 단골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마르타씨가 그토록 바쁜 이유는 다름 아닌 '봉사 활동' 때문이다. 레크리에이션, 포크댄스 등으로 재능 봉사를 실천한 지 벌써 20년이 되었다.

"취미 삼아 복지관에서 레크리에이션을 배우면서 시작되었죠. 그 과정에서 포크댄스를 접하고, 전문가 과정을 밟게 되었어요. 그 후 필요한 곳이 있으면 달려갔어요." 취미가 전문가 수준이 되기까지는 계속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시간 날 때마다 유명하다는 곳에서 지도를 받았고 스스로 연구도 해나갔다. "건전하게 사람들이 어울리면서 웃는 모습이 좋았어요. 제가 별 것 아니지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고요."

 

 

포크댄스는 각 민족이나 지방에 전해져 내려오는 민속 무용을 말한다. 몇몇 무용수들이 관객을 대상으로 공연하는 춤이 아닌,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울려 즐기는 춤이다. 그녀의 강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여준다. "원형으로 서서 안쪽을 봐주세요." 경쾌한 음악소리에 따라 스텝을 밟고, 손뼉도 마주 친다. 그녀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우렁차다. "춤추기 전 스트레칭을 하고, 점점 템포를 빨리하며 분위기를 만들죠. 춤과 노래, 어느 하나 유행에 뒤쳐지지 않게 노력해요."

'레크리에이션'이 뭔지도 몰랐던 그 때, 우연히 무료강좌를 듣게 되었다. "그 시절 아픔만 있고 웃음은 잃었는데, 앉아 있는 시간 내내 웃고 있더라고요." 마음 깊이 새겨진 상처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눈물 흘리게 한다고 했다.

"남들은 명절이라고 맛있는 것 먹고, 화기애애 가족들끼리 모이는데 저는 구석에서 울지도 못하는 신세였어요. 뱃속에 아기는 7개월째 자라고 있고 아기아빠는 속 썩이고…" 그녀의 목소리가 잠기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요즘 되돌아보면 감사할 일만 많다고 했다. 누구나 우여곡절은 있는 법이고, 하느님께서 주신대로, 부모님께서 주신대로 많은 복을 받았다고 했다. 그녀는 모태신앙인이라는 자부심이 컸다. "아버지께서는 저를 업고 20리길을 걸어 성당에 다니시곤 했어요. 늘 봉사하시던 모습이 제 기억 깊숙이 남아 있지요." 밤중에라도 동네에 무슨 일이 있으면 한걸음에 달려 나가고, 온갖 궂은 일은 도맡아 하셨던 아버지.

그 영향 때문일까? 그녀는 봉사를 사명처럼 여겨왔다. 일본에서 미용 공부를 하던 시절에는 어려운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미용봉사를 했다. 10년 전 오산의 한 병원에선 알코올중독자와 어르신들에게는 레크리에이션을, 정신질환자에게는 미용봉사를 했다.

"예전에 지체장애아동시설에서 했던 봉사도 기억나네요. 명절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다 식당에 들어갔죠. 식당 아주머니께 감사하다며 일어나 노래하는 아이들을 보며 다함께 웃었죠." 아프고 약하고 힘든 사람들은 늘 그녀의 마음 한 켠에 남아 있다.

 

 

"저도 힘들고 어려운 시기엔 집 밖으로 나오기도 싫었어요. 어리석어 잠시 냉담했던 적도 있구요. 그런데 고해성사 중 '주저앉지 마라'는 신부님 말씀에 정신이 들더라고요."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우울했던 마음이 밝은 음악과 율동으로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그 행복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소리 내어 웃다보면 세상에 감사할 일이 더 많다는 걸 깨닫게 되지요."

미용실 한 쪽 벽면에 걸린 액자 하나. 사진 속 화려한 민속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2007년에 있었던 노인대학예술제에서 포크댄스로 매교동본당이 최우수상을 받았죠. 작품으로 화합 · 사랑 ·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국적, 나이, 지위의 벽을 뛰어넘어 사람들이 금세 어울리며 웃는 모습에 매번 놀란다. "어릴 적 간직했던 꿈이 있어서일까요? 제 작은 재능으로 봉사를 실천하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어요."

 

 

현재 상하성모세본당 노인대학에서 포크댄스반을 지도하고 있는 그녀. 12월에 있을 발표회에서 좀 더 작품성 있는 안무를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일까.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포크댄스를 지도하는 분을 보며 저의 미래를 그리죠.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행복을 전하고 싶어요."

 

 

출처 :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외침(2015년도 8월호 p.26) 중에서, 이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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